수많은 문화적 업적을 남긴 그리스, 다방면에 걸쳐 현대 문명에 큰 영향을 주었고 현대의 국가 체제와 시민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페르시아제국은 중앙집권 통치 체제를 구축하고 넓은 지역을 확보하며 그 영향력을 행사하면 대제국인데 이 들의 전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 고대 그리스(도시국가 폴리스)
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 그리스는 도시 국가인 폴리스를 형성하여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에 속한 각각의 폴리스는 독립적인 행정, 법률, 군사, 경제 체제를 갖고 있었고, 자체적으로 정치적인 결정을 내리고 통치했습니다. 폴리스는 주로 민주주의나 공화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회의나 의회를 통해 정치적인 결정에 참여하고, 공공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폴리스는 그리스 역사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리스의 정치 체제와 문화적인 발전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폴리스의 개념과 원리는 현대의 국가 체제와 시민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폴리스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있습니다.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철학, 예술, 문학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고, 스파르타는 군사적인 훈련과 도덕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독특한 사회 체제로 유명했습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는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문화적 매우 번영한 시기였던 고대 그리스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많은 철학자를 배출했습니다. 문학적으로는 그리스 신화와 영웅 이야기가 문학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문학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고대 그리스는 또한 건축과 조각 분야에서도 뛰어났습니다. 그리스 신전은 독특한 양식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파르테논 신전입니다. 그리스 조각상은 인체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금의 올림픽 대회는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런 다방면에 걸친 유산은 현대 문명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550년부터 기원전 330년까지 지속된 고대 제국으로, 현대 이란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아헤메니드 왕조의 창시자인 시로스 대왕은 다양한 지역을 정복하고 넓은 영토를 확보하며 페르시아 제국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 후손들인 다리우스 1세, 크세르크세스, 아르타제르세스 거쳐 제국을 확장하고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매우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의 이란중심으로 발전했던 이 제국은 , 이후 아시아, 중동, 이집트 등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통치하였으며, 그 영향력은 그리스와 인도에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괄하는 다민족 제국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수용하고 조화롭게 공존시키는 정책을 추구하였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군사적으로도 강력하였습니다.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였고, 기병과 궁병이 유명했습니다. 이러한 군사적인 힘을 바탕으로 제국 내부 반란을 진압하여 내부 안정을 유지하고,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혔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4세기에 맥콘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후 알렉시스 대왕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페르시아 제국은 저물고, 알렉산더의 막 도니아 제국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쟁
이오니아는 페르시아 제국의 한 지방이었으며, 그리스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역에 있었습니다. 이오니아의 도시들은 페르시아의 통치 하에 있었지만, 그리스 문화와 가까운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 도시국가들과의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지배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던 이오니아는 그리스 도시 국가들로부터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하려 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는 지중해에서 해상권을 바탕으로 그 영향력을 키우려 하고 있었고, 해상 무역을 하던 아테네는 이런 페르시아와의 갈등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기원전 499년, 아테네의 군사 지원을 받아 이오니아는 독립을 위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군대를 보내 반란을 진압하고, 이오니아를 도운 아테네에 보복을 하려고 그리스 원정에 나섰습니다. 기원전 492년, 페르시아 군대는 그리스 북부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를 점령하고 아테네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함대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다리우스 1세의 1차 원정은 여기서 마무리되었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그의 제국을 더욱 확장하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해 2차 원정을 보냈습니다. 페르시아 군대는 에게 해협을 건너 무리한 행군을 했습니다. 아테네는 밀티아데스 장군을 보내 페르시아 군과 맞서게 했습니다. 전쟁터는 마라톤 평원이었습니다. 네 바로 마라톤 경기가 생겨나게 된 마라톤 전투입니다. 전투는 아테네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를 압도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페르시아 군대는 무리하게 에게 해를 건너 행군을 했을 뿐 아니라 아테는 군대의 유인 작전에 포위당하고 대패를 한 것입니다. 이 전투는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였습니다. 아테네 군대는 승리의 소식과 함께 페르시아 군이 곧 해상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라는 병사를 보냈습니다. 페이디피데스는 약 4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려가 소식을 전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뒤로 페이디피데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마라톤 경기가 생겨났습니다. 마라톤 전투는 그리스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되며, 아테네의 승리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큰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다리우스 1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는 기원전 480년, 3차 그리스 원정에 나섰습니다.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동맹군을 형성하여 맞섰습니다. 스파르타는 전쟁 초기 소수의 병력으로 엄청난 전투를 하여 스파르타의 위용을 보여주었지만 결국은 패배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멋진 패배는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테네는 해상에서 페르시아와 맞섰습니다. 아테네는 상대적으로 전함이 작고 가벼워 그리스에게 유리한 폭이 좁은 살라미스 해엽으로 페르시아 해군을 유인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페르시아는 다음 해에도 그리스에 쳐들어왔지만 그리스 동맹군에게 패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 페르시아는 그리스 정복을 포기했습니다.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전쟁(2) - 미국의 개입,게릴라전,구정공세,닉슨독트린 (0) | 2023.05.22 |
---|---|
베트남 전쟁(1) - 외침의 역사 베트남, 남북의 분단, 혼란 (0) | 2023.05.22 |
십자군전쟁- 제1차 십자군 전쟁,예루살렘을 회복하다. 제2차 십자군 전쟁, 목적을 잃은 전쟁 - 변화 (1) | 2023.05.21 |
제2차 세계 대전 - 발발, 전개, 종전 그리고 냉전, 세계질서의 변화 (0) | 2023.05.20 |
제1차 세계 대전 - 제국주의가 만든 전쟁 , 전쟁의 발발,전개,종전 그리고 변화 (1) | 2023.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