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인구 2억의 초강대국 미국, 열강의 식민지였던 인구 1500만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베트남 이 두 나라의 전쟁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미국이 패배하였습니다. 미국의 유일한 패배였던 베트남전쟁, 2차 대전 독일과 일본을 동시에 상대해서 이겼던 그 강대한 미국은 왜 이 작은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물러나야 했던 걸까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베트남 전쟁 - 외침의 역사 베트남
베트남의 역사는 외침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의 강대국인 중국 옆에 위치한 상대적 약소국인 베트남은 중국의 외침에 시달렸고, 그 대 몽골의 시대에 몽골제국에게도 침략당했으나, 이 모든 외침에도 베트남은 질기게도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에 베트남은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은 나라는 프랑스였습니다. 베트남은 그렇게 수십 년간 프랑스의 식민지로 약탈당하며 숨 죽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나라를 뒤 찾을 기회를 엿보면서 말이죠. 그리고 1940년 베트남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파죽지세로 프랑스를 점령했고 본토를 빼앗긴 프랑스는 식민지를 제대로 관리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것은 베트남에게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베트남의 국부로 칭송받는 호찌민(Ho Chi Minh)이란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호찌민은 베트남 북부에 세력을 모아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입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또다시 위기를 맞이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면서 본토를 되찾은 프랑스는 식민지를 재탈활 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베트남과 프랑스의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놀랍게도 이 전쟁에서 이긴 것은 베트남이었습니다. 독립의 의지로 똘똘 뭉친 베트남은 강했습니다. 베트남은 기습적이고 유동적인 전술을 사용하며 프랑스군과 싸움을 길게 가지고 가며 지하 터널망과 동굴을 활용하여 게릴라 전투를 벌여 프랑스와의 전투에게 승리하였습니다. 결국 1954년 휴전협정을 맺고 프랑스는 물러났습니다.
남북의 분단 - 제네바협약 (Geneva Conventions)
프랑스가 물러가긴 했지만 베트남을 온전히 되찾은 것은 아닙니다. 호찌민의 북베트남은 민주공화국, 공산주의 세력 안에 있었지만 남베트남은 아직도 프랑스의 영향력이 남아있어 자본주의 세력 안에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물러나면서 제네바 합의가 진행됐는데 이때 체결된 제네바 합의에 따라 베트남은 일시적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이 둘을 합치면 혼란에 빠질게 분명하니 남북으로 가르고 2년 후 총선거를 총해 합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협의대로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북베트남은 프랑스에 맞서 싸워 민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를 하면 북베트남이 이길게 뻔했습니다. 이렇게 북베트남이 선거에서 이기고 베트남이 공산통일이 되면 동남아시아에는 공산 국가가 들어서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1950년대에는 미국과 소련이 냉전상황으로 팽팽히 대립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는 도미노 이론(Domimo theory)이라는 게 팽배했습니다. 하나의 공산국가가 들어 서면 그 주변국가도 공산화된다는 이론입니다. 동남아시아의 베트남이 공산화가 되면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공산화될 것이고, 냉전상태에서 줄다기를 하고 있던 소련의 세력은 커지고 미국은 위축될게 뻔했습니다. 때문에 미국은 이 사태를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때는 1950년 냉전 상황, 자본주의 진형의 초강대국미국이 함부로 전쟁에 나섰다가는 베트남 옆의 중국 그리고 그 뒤에 소련의 개입이 불 보듯 뻔하고 이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혼란 - 민족해방전선(베트콩)
미국이 어찌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형국이 미국에 유리하게 돌아섭니다. 갑자기 남베트남이 남북 총선거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선거에서 질게 뻔한 남베트남은 1955년 남베트남에서만 선거를 진행여 정부를 꾸렸습니다. 남 베트남, 베트남 공황국이 건국되었습니다. 이때 남베트남의 초대 대통령은 응오디지엠 이란 인물이었습니다. 알아서 선거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나라까지 건국되었으니 미국에는 최고의 상황인 것입니다. 총선거를 거부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한 남베트남에게 화가 난 북 베트남의 호찌민은 무력으로라도 통일을 시도하려고 했습니다. 미국은 이를 막아야 했고, 그 방법으로 남베트남에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남베트남이 스스로 세력을 키워 북베트남을 저지하기 바랐습니다. 하지만 남베트남의 응오디지엠은 무능력했고 정부는 부패했습니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토지정책으로 농민의 민심까지 바닥났습니다. 상황은 더욱 나쁘게 돌아갔습니다. 남베트남 내의 공산화 세력은 이런 바닥난 민심을 회유하여 반 정부적인 농민과 함께 남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베트콩입니다. 이 민족해방전선-베트콩은 북 베트남과는 다릅니다. 북 베트남은 호지민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이고, 베트콩은 남베트남 내의 공산세력과 무능력하고 부패한 정부에 반란기를 든 농민과의 연합입니다. 이렇게 남베트남은 점점 혼돈 상태가 됩니다. 부패한 정권, 화난 민심, 그리고 베트콩까지 사회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 국경부근에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은 무력 충돌까지 점점 빈번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두면 남 베트남이 무너지고, 북 베트남이 베트남 전체를 공산화 통일 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미국은 무능력한 응오딘지엠과 그 정권의 부패를 가장 큰 원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은 남 베트남내의 군부세력을 사주,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은 뒤집혔으나, 이는 오히려 더욱 큰 혼란을 야기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다른 군부세력은 너도 나도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잡으려 했습니다. 이 시기 베트남은 1년에 한 번 꼴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이에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미국은 직접 나서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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